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944년 [[소련군]]이 불가리아로 진입하자 불가리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대량 숙청을 거쳐 [[1946년]] [[9월 15일]] 당시 9세였던 [[시메온 2세]]를 몰아내고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. 초대 서기장은 [[게오르기 디미트로프]]가 올랐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480px-1969-08-Bulgarien_Sofia_Dimitroff-Mausoleum_fec_Monika_Angela_Arnold_Berlin1.jpg]] 디미트로프가 1949년에 사망하자 시신을 [[엠버밍]] 처리하고 [[영묘]]를 조성했는데 불가리아가 민주화되면서 시신은 [[화장(장례)|화장]]되었고 영묘 자체도 1999년에 헐렸다.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벌코_체르벤코프|벌코 체르벤코프]]의 뒤를 이어 1954년 집권한 [[토도르 지프코프]]는 불가리아의 공산체제가 무너진 1989년까지 무려 35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. 1955년에는 [[국제연합]]에도 가입했으며 1971년에는 지프코프 헌법을 채택해 민주화될 때까지 사용했다. 지프코프 정권이 [[친소]] 정책을 유지하면서 소련이 주장한 '[[코메콘|사회주의 국제분업]]'에 적극 협력해 [[농업]] 성장에 집중했는데 소련의 총괄 아래 [[폴란드 인민 공화국|폴란드]], [[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|체코슬로바키아]], [[동독]]은 [[중화학 공업]]을, [[헝가리 인민 공화국]]은 [[경공업]]을, 나머지 나라들은 1차 산업을 집중 육성했다. 당연히 [[북한]], [[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|루마니아]]와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큰 반발이 일어났지만 농업을 집중 육성하는 국가로 지정된 불가리아는 군말없이 이 계획을 정말 열심히 수행해서 지금도 먹는 것 하나는 풍족하고 물가도 크게 저렴하다. 여하튼 이 시기에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그럭저럭 먹고사는 나라가 될 뻔했지만 소비재의 질이 낮다는 문제점에 시달렸다. 당시 불가리아는 이탈리아 다음으로 남유럽에서 잘 살던 나라였던 덕택에 1970년대 들어서 상당한 액수의 외채를 빌렸는데 이는 1980년대 경제 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. 이 시기 불가리아는 소련의 [[16번째 공화국]]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소련과의 관계가 밀접했다. 지금도 러시아와 관계가 나쁜 건 아니지만 공산주의 시절에 비하면 미적지근하다. 다만 이 시대에는 불가리아 정부가 자국의 [[소수민족]]인 튀르키예인들을 탄압하고 이들을 튀르키예 국경으로 강제 이주시켰다.~~[[로힝야족]]의 발칸반도 복사판.~~ 여담으로 이들은 1989년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으나 탄압당했다. [[동유럽 혁명]]으로 지프코프는 실각했고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페터르_믈라데노프|페터르 믈라데노프]]가 집권하면서 다당제를 도입하였으며 불가리아 공산당도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오늘날의 [[불가리아]]가 되었다. 여담으로 지프코프는 [[동유럽 혁명|공산주의 정권이 붕괴]]된 후 체포되기도 했지만 건강 악화를 이유로 연금 상태로 사는 것이 허락되었다. 1996년 불가리아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고 1998년에 폐렴으로 사망했다. 불가리아 정부는 지프코프의 국가장을 거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